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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판에서의 꽁지돈

담박제 2004. 4. 27. 00:48
 

   도박판에서의 꽁지돈


  신을 모신지 두해를 넘어서면서 신어머니를 모시며 분주하게 무당수업을 쌓으려 다니기도 시간이 모자라 전전 긍긍 할 때. 한순간의 탈선처럼 한 남자에게 순정 쏟았다가  스스로 마음 의 정리를 해 놓고 후회와 미련에 몸부림치며 초죽음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탈선은 무당으로서 면모를 갖추기도 전에 그 나마의 무당으로서의 의무와 책임감마저 망각하게 했던 것이다.. 내 자신이 아주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어서 괴로웠다.  어느날 갑자기 오지의세계로 접어들은 내 삶의 변화는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예나 지금이나 잘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안가는 것 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딱 부러지는 상황으로 살아보지를 못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어정쩡하게 흘러갔다  그 모든 것 중에 제일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학벌문제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공부를  도중하차한 것이 이렇게 평생의 한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차라리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다면 더 편안하게 무당으로서의 삶을 살아 갈수 있을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적으로 신명을 신봉할 수 있어야  편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다  더더군다나 환경이 남만큼 좋은 것도 아니다. 학벌도 환경도 좋지 않은 주제에 내 안목만 믿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도  내가 갖고 있는 모순 중 제일 큰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사람은 언제나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내 무지함이 언제나 나를  초라하고 부끄럽게 한다.   반면에 그 초라함과 부끄러움을 감추려 노력하기 보다는 나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의 당당해지기를 더 노력 한다. 그런 내 생각이 잘못 오인 되어 남들 에게 가십거리가 되기 십상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항상 웃기도 잘하는 나지만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있었고,  경우가 틀린 것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 모진 삶 속에서 성격이 말 할 수 없이 급하게 거칠게 변해 버린 것이다.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표출 된다. 절대로 내 감정을 숨길수가 없다.  불붙듯이 화를 내고 또 금방 화를 푼다.  절대로 오래 화를 품고 가지를 못하는 것도 내 성격 중에 하나이다. 그러한 것들 이   경망스러울 정도 일 때도 있다는 것도 나는 잘 안다.

더욱이 내가 내 자신이  가장 못 돼먹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내 기준에서 벗어난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처참하게 기분을 느낄 정도로 무시를 해버린다.  잘나지도 못한 주제에 항상 잘난 척을 하고 지내는 꼴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자존심이면서 내 에너지였는데,  남들은 절대로 그 꼴을 봐줄 수가 없었을 거다.  잘나지도 못한 것이 주제꼴을 모르고  꼴 갑을 떤다고 생각들을 했을 것이고 당연히 나는 남에게 미움을 샀을 것이다.  누군가가 내 등 뒤에서 흉을 봤다 해도 화도 안 났었다. 아주 무시해 버렸으니깐 화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언제 나처럼 나는 혼자 인 것이다, 

혼자라는 것은  그만큼 처세를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

그렇게 초죽음으로  며칠을 지내면서 너무 외로웠다.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누구도 내 곁에는 없었다. 더더군다나 내 밑에서 일을 하던 아이를 집에서 내 보내 독립을 시켰던 차이다.. 스스로가 마음 대문에 빗장을 걸고 놓고 두문불출했기에 내 속내를 나눌 친구가 없었던 것이다.  내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듯이 주위로부터 단절된 채로 며칠을 고립상태로 살았다. 하루는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린다. 문을 열라고 고함을 지르다시피 했다. 집에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문을 열란다.  옆집에  언니 의 목소리다. 거울을 보니 몰골이 형편이 없다. 먹지도 않고 울고 웃다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지낸 며칠이었다. 언니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시시  일어나 문을 열었다. 힘없이 문을 여는 나를 향해 언니는 눈을 흘긴다.

“무슨 애가 그러니? 어쩌면 그렇게 죽은 듯이 꼼짝도 안하니? 처음에는 몰랐어. 평소처럼 산에 갔는지 알았지. 근데 창문너머로 보니까 네가 누워 있더라. 너 무슨 일 있지? 요즘 그 사람 차도 안보이고...어떻게 된 거야? 얘, 너...꼴이 아주 엉망이구나...”

“무슨 일은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어...”

언니는 숨도 안 돌리고 나를 채근한다. 계속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는 어디 갔냐고 물어오는 것이 어느 틈에 눈치를 차린 것 같다.

“언니 사실은 말이야, 일이 있었어……. 내가 성급했지 뭐……. 속은 거야. 남자는 다 그런가봐. 내가 잘못 생각을 했어. 알고 보니 그놈, 참 나쁜 놈이더라고……. 그래서 끝냈어. 근데 언니, 나쁜 놈이긴 한데, 막상 보내고 나니까 너무 견디기가 힘드네? 내 행동이 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잘 했다고 생각해. 언니, 그냥 이 정도만 얘기할게. 자세한 얘긴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해줄게. 지금은 얘기 할 기운도 없거든.”

나는 누워버렸다. 희 언니의 삶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언니가 나에게 각별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나와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리 가까이 하지 못하던 사이였다. 언니는 속칭 하우스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하우스는 일반 가정집에  도박꾼들이 모여서 도박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그들만의 은어다. 장소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식사를 마련해주고 그들 용어로 개평을 뜯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개평이란 것이 하루 저녁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옆집 언니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 언니 집에서는 매일 저녁 수백만 원대에서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매일 맛있는 음식냄새가 우리 집까지 풍겨오곤 했다. 처음 옆집으로 언니가 이사를 왔을 때 언니의 부탁으로 나는 그 집에서 사고가 나지 않고 돈도 잘 벌 수 있게 고사를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기도 한일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무당으로서 확고한 주체성을 갖고 있지 않던 상태였기에 아무렇지 않게 고사를 지낼 수 있었다. 이혼한 언니는 혼자 살면서 생계 수단으로 하우스를 차린 것이다. 그런 언니가 돈을 많이 벌기를 나는 진심으로 빌었다.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언니의 집에서는 별다른 사고가 나지 않았고 밤낮없이 하루도 쉴틈 없이 도박판을 벌여 많은 돈을 벌었다. 쓰러지듯 누운 내 손을 잡아 이끌며 언니가 말한다.

“얘, 이러고 있으면 더 큰병이 나겠네... 일단 밥이라도 먹어야 하잖니? 우리 집으로 가자!   우리 아줌마가 반찬은 맛있게 하잖아?  가자, 어서 일어나!.” 

웃옷까지 챙겨 입혀주는 언니를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언니 집 마당에는 몇몇 젊은 남자들이 담배를 피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한사람은 온갖 욕을 해가면서 오늘 재수가 더럽게 없어 올인이 됐다고 한다. 또 한 남자는 한숨을 푹푹 쉬며 커다란 핸드폰으로 통화중 이었다. 돈을 빌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었다. 언니의 모습을 보자 황급히 전화를 끊고 언니에게 다가 오고 있었다.

“아줌마. 꽁지 좀 놔요 ”

언니는 못 들은 척  내손을 잡아끌고 거실로 들어간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대여섯 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 백 원짜리 동전과  천 원짜리를 앞에 놓고 포커를 돌리고 있다. 나는 쭈뼛거리며 언니를 따라 주방에 들어섰다. 가끔 우리 집에 찾아와 김치를 담아주던 주방 아줌마는 나를 보는 순간 여긴 웬일이냐면서 호들갑스럽게 반긴다. 언니와 마주 앉았다.

“아줌마 밥 좀 차려주세요. 얘 좀 부드럽게 먹여야하는데 뭐가 없을까 ?”

“아줌마 괜찮아요... 아무거나 조금 주세요. 저 지금 많이 못먹어요.”

괜스레 쫒아 나선에게 후회가 되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하다. 그러자 아줌마는 능숙한 솜씨로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마당에서부터 쫓아온 남자에게 붙들렸다 그는 3백만 원만 꽁지를 놓으라고 성화다. 언니에게선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주방 옆방 문이 열려 있었다. 얼핏 열린 방안을 스치듯 엿봤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라보자니 더 제대로 구경하고 싶어졌다.

언니의 눈치를 보면서 구경해도 되냐고 물었다. 말하는 순간은 좀  창피하기도 했다. 언니는 돈을 빌려달라는 남자를 따돌리듯 흔쾌히 “그럼, 가서 봐도 돼”라며 내손을 잡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간다. 동그랗고 커다란 원탁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남녀가 둘러 앉아있다. 원탁은 당구대처럼 초록색 원단으로 덮여 있었다. 원탁 위에 수북하게 돈이 쌓여 있다.        만 원짜리와 하얀 수표들이 뒤엉켜서 놓여 있었다. 사람들의 앞에 카드가 보인다. 몇 장은 그림이 보이고 그 밑에 몇 장은 뒤집어져 놓여 있다. 서로들 간단한 말로 의사를 전달하면서  한사람이 돈을 더 올려놓으면 뒤따라서 올려놓기 시작한다. 한 명이 돈이 얼마나 놓여 있나 를 살피는 것 같더니 ‘백“ 하며 돈을 던져 넣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바로 이어서 말한다. ’백 받고 이백 ”돈은 순식간에 다발로 늘어나고 있었다. 여자 하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다이‘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카드를 볼 수 없게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담배를 피워 물으며 한숨을 쉰다.  뒤이어 한 사람이 ”콜’ 하며 돈을 다발로 밀어 넣는다. 그러자 남은 네 명에게 누구나 볼 수 있게 펼쳐진 카드가 한 장씩 돌려진다. 네 명은 모두 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앞에 떨어진 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명이 표정 없이 말한다. ‘첵!’ 바로 이어서 다른 이가 얼굴을 찡그린다.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다른 또 한 명은 순간 표정이 밝아지는 듯하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삼백‘ 하더니 돈을 센다. 돈을 세는 모습이 놀라울 정도다. 손놀림은 완전히 자동화된 기계였다. 센 돈은 수북이 돈이 쌓인 탁자위에 던진다. 이미 놓여있던 돈들과 엉켜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은 심하게 충혈 돼 있고 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징글맞게 느껴진다.

정신없이 바라보는 나를 향해 언니가 말을 건다. “”승부가 걸린 거야, 이번 판은. 몇 번 나올까 말까하는 판이야. 재미있지?  구경해봐, 재밌어!“

언니가 방을 나간 뒤에도 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숨을 죽이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 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포커의 룰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면서 긴장이 됐다. 누가 과연 이길 것인가가 궁금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는 한참을 뜸 들인다. 그렇게 시간을 끌며 망설이면서 자기 앞에 있는 돈을 가늠하는 것 같았다. 이미 돈은 얼마 없어 보였다. 결국 힘없이 ‘다이 ’ 하고는 카드를 집어넣고 만다. 처음에 콜을 불렀던 사람은 난감한 표정이다. 긴장감이 감돈다. 맨 처음에 콜을 불렀던 사람이 카드를 엎는다  “이거야 참...” 혼자 말처럼 중얼거리는 모습이 못내 아쉽고 씁쓸한가 보다. 결국 두 사람만이 남았다. 돈을 던져놓은 사람은 먼저 돈을 던졌으면서도 초조한지 담배를 피워 문다. 숨 막힐 듯한 조용한 시간이 흐른다. 기다리는 것이 초조하고 답답한지 돈을 던진 사람이 채근을 한다.

“뭘하셔? 결정은 이미 난 것 같은데...”

남은 한사람이 자기 앞에 놓인 돈을 세기 시작한다. 한 손으로 돈을 잡아들고 엄지손가락을 이용해서 한 장씩 밀어가며 세는 모습이 신기했다. 웃을 얘기지만 그렇게 돈을 세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한지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방식을 한참동안 연습했었다.

먼저 돈을 넣은 사람은 초조해 보였다. “물귀신 작전이구만” 하고는 자기 앞에 엎어진 두장의 카드를 슬며시 확인한다. 말한 액수대로 돈이 정확히 세어지자 돈을 앞으로 밀어 넣으며 말한다. ”뭘 잡았는데? 까봐.“ 돈이 놓여진 것이 확인이 되자 한사람은 “나인 짚” 하며 숨겨진 카드를 펼쳐 보인다. 카드를 확인한 상대편에게선 기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이 졌네. 어쩐지 끌려가는 것 같아 찝찝하더라.”

상대편이 진 것을 인정하자  이긴 자는 양팔을 크게 벌려서 수북이 쌓인 돈을 자기 앞으로 당긴다. 먼저 들어간 사람은 죽기를 잘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렇게 한판이 끝났다. 카드를 직접 하는 사람이나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이나 그 방안에서는 긴장감만이 팽팽하게 돌고 있었다. 내 돈도 아니면서 괜히 숨이 막히면서 스릴감까지 느꼈다. 아, 이런 기분 때문에 도박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카드는 돌려지고, 한판이 끝날 때마다 그 긴장감은 스릴과  쾌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판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한 뒤에 언니와 마주앉아 커피를 마셨다. 아까부터 돈을 빌려 달라던 남자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온다. 언니는 꽁지고 뭐고 돈이 없으니 내일 하라고 단호히 거절을 한다. 그런데도 남자는 부득불 언니를 졸라댄다. 나중에는 차 꽁지 불러달라고, 자기 차가 소나타니까 적어도 삼백은 줄거니 얼른 불러달라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네가 아는 곳에다 전화를 하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한다. “어휴, 어제도 잃고 오늘도 잃었거든. 좀 쉬었다가 하면 좋을 텐데... 도박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안 그런가 봐? ” 주방아줌마도 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끼어든다. “맨 날 돈을 딸 것 같으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 근데 쟤는 신용이 좋잖아? 내가 빌려줄까?” 언니는 눈을 찔끔찔끔하면서 주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하염없이 앉아서 사는 얘길 나눴다. 혼자서 끙끙대고 힘들어할 때는 그것이 전부였는데 이곳에 앉아 있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또 다른 한세상이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방안에서는 거금이 오가는 도박판이 벌어지고 마루에서는 뒷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동전과 천 원짜리를 던져가며 풀 라라고 하는 카드를 하고 있다. 언니에게 마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뭐냐고 물었다. 뒷전이라는 사람들은 일종의 사채업자들이었다. 도박판의 사채업자들은 일반적인 사채업자들과는 다르다고 한다. 언니로부터 도박판의 은어까지 소상하게 전해 들으면서 이곳 구조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도박을 하는 사람을 ‘선수’ 혹은 ‘말’ (직업적으로 도박하는 사람) 이라는 은어로 부른다. 뒷전은 선수에게는 비싼 선이자를 떼고 돈을 빌려 줘 도박을 하게 한다. 그리곤 도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돈을 따면 바로 그 자리에서 빌려준 원금에다 돈을 빌려준 감사의 표시로 얼마만큼의 돈을 얹어 회수한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돈을 잃게 되면 열흘마다 이자가 늘어난다. 아예 뒷전이 돈을 떼일 경우도 있다. 그런 위험부담 때문에 담보 할 수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담보로 잡는다고 한다. 말을 사기도 한다고 한다. 도박을 잘하는 사람을 아예 산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가 돈을 따면 돈을 반씩 나누어 갖는다. 그러니까 뒷전은 뒷전 나름으로 다른 형태의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렇게 돈을 벌면 떼 부자가 안 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뒷전이라는 사람들은 도박판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며 자기들 끼리 게임으로 시간을 소일하며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도박할 장소를 제공하면서 그 여러 사람들에게 식사까지 제공한다. 음식은 보양 식으로 만든다. 그 대가로 받는 돈 역시 상당했다. 그렇게 축적하는 부는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무당이 되고부터 정말 많은 이웃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만나고 배우고 있을 뿐이었다. 도박판을 들여다보면서 바라보는 인간군상들...

다음날 오후 옆집 언니가 사람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그날 나를 본 사람들이 내가 무당이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서로들 운세를 보겠다고 하기에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잠자지 못한 티가 폴폴 났다. 피곤에 절어 있었다. 어이없이 그들과 마주앉았다. 그리고는 한사람씩 점을 쳐주기 시작했다. 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한결 같았다. ‘석이 언제 사느냐’ 즉, 돈을 언제쯤 얼마나 딸 수 있는 가의 문제였다.  요즈음 왜 도박만 하면 돈을 잃는지, 혹은 행여 경찰이 들이닥쳐서 경찰서로 갈 일은 없는지...그 모든 것이 그들의 고민이었다. 나는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번듯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런 몹쓸 도박에 빠진 것인지 그들이 스스로 그 사연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한마디씩 깊게 파고 들어가 봤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처럼 도박판에 빠진 사연도 갖가지다. 그런 가운데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여자들은 심심하고 무료한 생활에서의 외로움에서 탈출구로써 도박을 시작한 것이 대부분 이었다. 그것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는 여자나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여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는 돈을 불리려고 그야말로 선수를  샀다가 선수가 하도 돈을 잃으니 갑갑하고 답답한 마음에 차라리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느니 자신이 직접 스릴이라도 느끼면서 깨져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한탕주위의 사고방식이 아주 깊숙하게 배어있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성실하고 밝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잊은 지 오래다. 직업이 의사인 사람도 있었다. 거의 매일 밤 포커를 하고 낮에 환자를 본다는 얘기 앞에선 할 말을 잊었다. 그런 그들이 주말이면 몰려가는 곳이 있다. 경마장이다. 도박의 끝은 경마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지 않는가. 그들은 아예 도박이 직업인 사람들이었다.

하긴 일본의 경우 빠징고를 직업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본적이 있다. 어이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돈을 잘 딸 수 있는 부적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더러는 도박의  재수 운을 돋아주는 운맞이 굿을 했다고 한다. 틈틈이 경찰 망을 피해야 하는 그들은 관재수를 막는 굿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더러 이상하다고 했다. 도박의 운을 이야기해주지 않고 자신들의 심리를 파악하려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나도 상담의 방향을 바꿔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들을 상담했던 무당이나 점쟁이처럼     대하는 수밖에 없겠다는...그래서 누군가에게 오늘은 방향을 바꾸어 앉아 보라고 나도 모르게 조언을 했다. 조언을 들은 사람은 신기하게도 그날부터 돈을 따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그 뒤로 나에게 도박 운을 점치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입소문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렇게 나와 도박판은 인연이 맺어졌다.

나는 바보 같이 실연의 아픔을 만들었던 내 어리석음을 비관하면서 자기 비하에 빠져들고 있었다. 상담하러 온 이들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방향을 일러주면서도 내 자신을 곧추 세우는 일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너무 외롭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특히 홀로 밤을 지새우는 일은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었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에 아주 익숙해져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만큼 행복한 일인가를, 그 행복한 순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또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고통인가를...나는 그 고통을 견딘다는 핑계 하나로 언니네 집에서 같이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날 외모도 깔끔한 청년이 도박판에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청년 이 카드를 하는 것을 보면 당시 유행했던 홍콩 비디오 속의 도박하는 주인공을 보는 것 같다. 비디오에서 보듯이  폼 나는 환경은 아니지만 여유 있게 상대방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폼이 나 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올인을 당한 것이다. 순간 그 청년의 폼 나는 도박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당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던 나는 그 청년에게 자청을 해서 돈을 빌려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말을 산 뒷전이 되어 있었다. 다시는 무당질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어차피 망가진 인생, 돈이라도 벌자는 마음이었다. 무당은 사제 이고 사제는 돈하고는 무관한 것이지만,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돈이라도 벌자는 마음이 커졌던 것이다. 그래서 매일 밤 이곳저곳의 하우스를 전전했다.

하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내 몸은 다시 형편없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파도 끙끙거리면서라도 도박판은 지켜야 한다. 눈속임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코 나는 돈을 벌수가 없었다. 이기기만 한다던 그 청년는 열 번이면 여덟 번은 돈을 잃고 말았다. 잃는돈의 액수도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하루는 돈이 바닥 이 났다 .나 역시 도박판의 다른 사람들처럼 돈 삼백만원에 내 하얀 브로엄 자동차를 맡기고 꽁지를 내어 뒷돈을 대주었다. 그리고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미친 짓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과 나는 평생에 우연히 라도  마주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속히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제였다. 나는 벌떡 일어서 집으로 왔다. 밤을 꼬박 지새우며 집 안팎을 말끔히 청소했다. 그리곤 전안에 무릎을 꿇었다. 신령님께 잘못을 빌었다. 한참 후에 그 청년 이 환히 웃으면서 우리 집으로 들어섰다.

“누나 오늘은 이겼어요. 이렇게 많이 이겼어요, 차를 찾아왔어요.”

그리고는 돈을 꺼내어 놓았다. 할말이 없었다. 그러나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그래 다행이구나. 오늘부터는 네가 혼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서 내게 갖고 간 돈을 갚을 수 있으면 갚아라. 못 갚아도 할 수 없다. 무조건 이 시간부터 나는 관여하지 않겠다. 오늘 이긴 돈을 나에게 전부 돌리면 네가 게임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이 돈은 갖고 가도 괜찮다.”

냉정한 어조 때문인지 아이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서 얼른 쉬든지 해. 나는 며칠동안 서울에 없을 거야. 지금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야 할 테고, 돈이 생기면 그 때 은행으로 넣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인연이 끝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그 뒤로 게임에서 계속 이겨서 얼마 안돼 내게 진 빚을 얼마 남기지 않고 변제했다. 사실 그 정도면 돈을 변제받지 못하는 게 도박판의 생리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그 청년이 다른 도박꾼처럼 치사하게 하지 않았던 것을 신령님께 감사하게 여긴다.

나는 다시 산으로 향했다. 한 달 동안 이산 저산 찾아다니면서 그동안의 내 타락한 시간을 신령님들께 고하고 용서를 빌었다. 다시 전안에 돌아와 무언의 기도를 했다. 무당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신령님의 응답을 다시 느끼게 됐다.  이것도 무당으로서의 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직접 겪지 않고는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의 깊이를 가늠 할 수 없다. 가늠도 못하면서 함부로 조언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이후로 나는 무당으로서의 자세를 잊고 경거망동 한다던가, 무당으로서의 갈등 이 심해질 때면 무언의 기도를 올린다.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신령님은 절대로 도박의 운세를 북돋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바레가 변질된 춤 문화가 만든 불행한 산물이라면, 한국인이라면 세대를 막론하고 즐기는 놀이 문화가 있다. 고스톱과 노래방이 그것이다. 명절 때나 집안 경,조사에 가족 친지들이 모여 앉으면 기본적으로 즐기는 놀이 문화다. 세 사람만 모이면 화투 패를 돌리고, 풀라는 도박이 아니라면서 식구들끼리 모여 앉아 즐기기도 한다. 상가 집에 문상을 가도 모여 앉아 화투를 친다. 포커가 더 유행이기도 하다. 목욕탕에서도 이루어진다. 쑥탕, 한증막 사우나에서도 그렇다.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돈 따기 놀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가벼운 돈놀이라고 해도 그것은 바로 도박으로 가는 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세상이 삭막해지면서, 이젠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하면 살 수가 없는 사회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변칙적인 방법을 써야만 살 수 있다고 하는 이웃들이 자꾸 느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도박의 심리가 내재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한탕주의가  살아나갈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접할 때 나는   서글퍼진다 

어느 날 누구는 로또 복권에 당첨돼 평생 꿈도 꿀 수 없는 돈을 버는 세상인데, 나도 이렇게 땀  흘려 일하면서 힘들게 살 것이 아니라 한번쯤 그렇게 왕청 돈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세상이다. 사행성의 심리를 사람들이 만들고 세상이 만들고, 그러면서 한탕주의가  활개 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사회의 현상 속에 무당들 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모 되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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