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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너무 많다

담박제 2004. 4. 20. 01:44
 

무당이 너무 많다


  나는 내가 무당이라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떳떳이 밝히려 한다. 내 나름대로는 무당으로서의 자부심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혼기를 앞두고 있는 딸아이를 생각하면  막상상견례라도 하게 되면 내가 무당임을 밝히지 못할것같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무당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세상을 살자고 생각해온 나였지만, 그 순간에는 위축되고 말것이다. 딸아이는 고맙게도 엄마가 무당이라고 반대하는 집안으로는 결코 시집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고맙다는 표현을 하긴 했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소리나 진배없다. 행여 딸아이는 엄마가 무당이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까지도 사회에서의 인식은 그러하다.

무당이 사회에서 천대받고 소외당하는 계층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무당이 되기 전까지, 나 역시 무당이라는 존재를 막연히 천대시 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무당이 되고 보니 그 소임의 가치가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고, 무당으로서 결코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자신도 생겼다. 이런 생각은 신어머니를 본보기로 무당으로서의 책무와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적지 않은 무당들이 신의 사제로 소명을 펼치기 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며 상업주의의 직업인으로 부상되는 현실도 어렵지 않게 직시할 수 있다.

  요즈음은 집안에 누가 무당이 된다고 하면 신이 나서 모두들 매달릴 정도다. 무당이 되고 나면 처음에는 그렇게 말리던 남편, 애인들까지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굿판에서 장구나 징을 치거나 하면서 본격적으로 무당의 수발을 들기도 한다. 즉, 무당은 자본주의적 시각에서는 큰 투자 없이 돈 잘 버는 직업인으로 쉽게 매도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신령님께서 수발을 들게 하느라, 일마다 되는 일이 없게 만들어서 할 수 없이 그 일을 하게 된다고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는 여러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고 있다. 그리고는 무당들보다 더 영검함을 발휘해서 사소한 일까지 관여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말이 그대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도하에 다수의 굿 비용이 거품처럼 커지고 수입이 늘어나니  열 일을 젖히고 매달리는 것이다. 아예 마케팅 작전을 세워 홍보부장으로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무당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를 끼치고 횡포를 부리는 것을 더 많이 보았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소외감 속에서 살아가는 어쩌면 무당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무당으로 외롭고 힘들고 소외된 삶을 살다보니 주변의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빠지곤 하기에 이러한 현상을 백분 이해할 수 있다.


굿 당에 가면 한두 방은 어김없이  내림굿이 진행된다. 굿을 진행하는 동안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기면 내림굿이 이루어지는 다른 방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느 날이던가, 다른 방의 내림굿을 보고 있는 데 굿 당 주인이 내게 물었다.

“저 사람은 임신 8개월인데  신을 받는대요...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순간 나는 대답을 못했다. 된다 혹은 안된다 라는 명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복을 입어서인지 임신했다는 걸 눈치 채지는 못했다.

“신 엄마가 될 사람이요, 우리 굿 당에서 내림굿을 한지 6개월이 됐거든요. 그런데 벌써 다섯 번째로 신딸을 만들고 있어요.”

어이없는 표정의 굿 당 주인은 비웃음 섞인 말투로 얘길 들려주면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뭐...그럴 수도 있지요.” 라고 대답을 하곤 얼른 내가 굿을 하는 방으로 들어 왔다.

신아들 무슨 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들어다.

“오마니 임신 8개월이래요...신 받는 사람이요...정말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굿 당 주인과 똑같은 질문를 내게 던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옛날에 살아보기를 해서 알겠니? 내가 신이라서 알겠니?

굿이나 얼른 하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오마니가 모르면 누가 아느냐며 머쓱해다.

나는 못 들은 척 하며 신복을 입었다. 그렇다,  누구도 쉽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신이 오셨다면 오신 거다. 임신한 것이 문제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신 내림을 한 지 6개월 된 애동이가 무당으로서 면모를 갖추기도 전에 신딸을 다섯명이나  두었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무당으로서 제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신딸을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신의 인연으로 끌어다가 주었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십 삼사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불과 10여 년 만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다. 내가 한남동에신을 모실 무렵에 무당집은 서너 군데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숫자는 날로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동네는 한 건물에 두 세개의 무당 간판이 걸려있기도 하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한집 걸러 간판이 걸려있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00암, 00사, 용궁선녀  작두장군,  천상선녀,  용궁선녀, 팔도명산 산신할아버지, 신점, 처음 신 내린 집, 동자집,   방울집,  족집게 점집과 같은 아주 다양한 종류의 간판들이 여러 주택가와 도로변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수없이 많다. 저 많은 점받이 집을 다 돌아다니시려면 우리 신령님도 고달프시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실없이 웃어 보기도 한다.

  그 정도는 예도 아니다. 세습무에게서나 볼 수 있는 현상들이 강신무에게도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가 무당인데 딸이 엄마 몰래 다른 곳에서 신을 모시고 엄마와 대립을 하기도 한다. 초등학생인 어린 딸에게 굿을 가르쳐서  굿거리에 세우는 부모도 있다. 세 자매가 차례로 신을 모시고 점받이나 무당노릇을 하기도 한다. 어느 박수들은 형제 여섯 명이 다 박수가 됐다.

  또 다른 현상도 있다. 젊은 사람들 무당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가끔 어린아이들에게 신이 내려  점받이가 되었던 경우가 아주 간혹 있었다.  몇 년 전  오십대의 박수가 일곱 살 된 딸아이에게 내림굿을 시키는 것을 본적이 있다.  박수인 아버지는 신문기자까지 대동시키고 내림굿을 벌였다.  입술이 새파랗다 못해 검기 까지 한 아이는 심장이 굉장히 약한 듯 했다. 그런 아이가   어거지로 작두날 위에 올라서는 것은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많이 울었다. 아버지의 속셈이 다 드러나 보였다. 그 어린아이의 내림굿 과정은 이후 월간지 등에 대서특필  되기도 했다. 그 아이가 지금 학교나 제대로 다니고 있는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먼 옛날에는 어려서 무당이 된다 해도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인구가 많지도 않았고 사회구조가 지금처럼 복잡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복합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어린아이가 신이 내렸다 해도 그 복잡한 구조 속에서 상담을 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접신이 되어도 신명이 열 가지, 백가지를 다 알려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큰 골자를 알려주시면 무당은 파장을 맞추어 해독을 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해득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에 따라 무당의 능력이 판가름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무당으로서의 내 생각이다 .  그런데 요즘은 어린 나이로 무속의 길을 걷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아이들을 대할 때면 안타깝고 서글퍼진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전혀 모르고 어떻게 인생 상담을 할 수가 있을까?  그저 몇 월에 운이 들어온다거나 좋지 않은 일을 맞춘다든가 하는 정도의 점받이로 살아가다가 어느 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영검한 점받이를 찾아 몰려 갈 뿐이다.

  나이 오 육십에 내림굿을 하고 무당도 아니요, 점받이도 아닌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버티다가 하는 수 없어서 내림굿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일수록 대부분 생계유지가 힘들다. 그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원해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그 말이 더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신명이 택했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즉 말문이 트이지 않으면 내림굿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무당의 몫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그런 마음으로 생활하다보면 어떻게든 손님을 받아서 돈이나 벌고 보자는 식으로 흘러가기 마련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무당의 본질을 벗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무속인들 사이에서는 내림굿의 비용을 투자적 가치로 평가할 만큼 규모가 놀랍게 커져있다. 사업을 하려면 굿에 이 삼천만원의 투자는 기본이라며 내림굿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옛날에는 접신이 되어 이상한 행동이 시작이 되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 그 집안의 내력을 알아맞히면서 길흉을 예언하면서 말문이 트이게 되면, 신어머니를 정해서 입문식을 가졌다. 삼년에 걸쳐서 내림굿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문도 터지기 전에 내림굿을 한다. 내림굿을 하면서 말문이 터진다는 것은 지금의 무당들이 당착한 문제 중에 제일 큰 모순이다. 내림굿이란 이미 접신이 되어 말문이 트이고 무당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신명을 좌정 시키는 굿이다. 이때 신어머니의 역할은 접신이 될 때 같이 따라 들을 수 있는 허주 또는 허신을 제쳐 내서 여러 형태로 접신이 되는 과정을 잘 파악하고, 신명이 오셔서 좌정 할 수 있는 환경과 새로이 내린 신애기가 신명을  잘 모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서 점을 보러 갔더니 신을 받아야 살 수 있고 신을 모시지 않으면 어린 자식에게 옮겨간다는 말을 듣곤 마음이 약해졌다는 얘길 가끔 듣는다. 나도 딸아이에게 신이 옮겨갈 수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그리고 신을 받고 나면 그동안의 고생은 끝나고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해서 신을 받았다는 이도 있다. 신을 받고 나면 ‘고생 끝!’인줄 알고 여기저기서 빚을 내서 내림굿을 한다. 그러나 말문은 트이지 않는다. 결국 답답한 것은 여전한 것이다. 말문이 터지지 않아 답답한데도 불구하고  굿을 한 자리라도 못 내면 몇 몇신 어머니들은 그냥 외면하고 만다. 그런 무당의 경우, 신어머니가 굿을 내는 신딸에게만 특별한 정을 주는 것을 지켜보면서 뒷전에서 허드렛일만 도맡아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서러운 마음에 다른 무당을 찾고, 그리고 다시 가리는 굿을 한다. 그렇게 몇 번씩 굿을 해도 돈을 벌지 못하고, 손님을 마주하고도 상담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무수히 보아왔다.


  누구라도 노력한 만큼 댓가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남들은 다 잘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그렇게 되면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불안하기 마련이다. 언제쯤 나는 희망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게 되는 것이 무당이다. 하던 일이 없어지거나 하던 일에 흥미를 잃으면 나타해지기 마련이고, 그 틈새로 병이 찾아온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기대하는 심리가 생겨난다. 그러나 그 기대까지 무너지면 남을 원망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쉽고 편안한 직업 쪽으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세상 천지에 쉽고 편안한 직업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결국 변칙적인 방법을 찾는다. 그 한 형태가 무속에서 거래의 한 방편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배고픔을 면하려고 가짜 사두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가장 절실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일이다. 가짜 사두들은 오로지 먹는 것을  타인에게 의존한다.

모종의 거래에 의해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먹이 사슬을 찾아 무당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이것이 요즈음 우리 무당의 일면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뜻있는 무당들은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누구하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서로가 주어진 현실 생활에 급급하기도 하며 행여 잘못 나섰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쉽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먹이 사슬에 의해서  무당 또는 보살이라고  이름을 지어 놓고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딱하기만 한 노릇이다. 하기야 이제 6개월이 된 애동이가 신딸이 5명이나 된다고 자기의 영검함을 뽐내고, 무당 된지 일이년만 되면 신딸이 수십명  이라고 자랑삼아 떠들어 댄다. 그렇게 마구잡이식의 내림굿을 행하는 작태라니...  이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내게 “신딸이 생기면 한 3년은 신딸이 신어머니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거꾸로 흘러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갓 내림을 하여 굿을 할줄 모르는  신딸이 굿을 내어  신어머니에게 굿을 주관하게 한 뒤에 굿이 끝나고 셈하는 과정에서 분배에 불만을 품고 신어머니를 등진 경우도 보았다. 또한 하루 일당을 정해 다른 무당을 불러다  굿을 주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태 속에서는 신딸과 신어머니 간에 신뢰감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진 것이다.

  요즈음 젊은 무당들은 대부분 자기가 모신 신명이  최고라고 하며 겸손 할줄 모른다.  그것은 자기가 모신 신명을 욕되게 하는 것 이라는 걸 생각 못하는 것 같다. 그 생각이  주위를 살피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만함 속에서 굿 비용은 점점 커져 가고 있고, 신어머니와 신딸의 관계가 금전에 따라 변모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때에 따라서는 서로 비참하게 등을 돌리고 원수보다 더한 관계가 되는 경우마저 비일비재한 현실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젊은 무당들이 원로 무당들  삶이나  돌아가는 구조를  속속 을 파악 하게 되면 자기주장 을 내세워 원로 분들을 엉망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즉, 원로 만신들의 순수한 정서를 금전으로 휘둘러 깨어 버리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신어머니와 신딸의 정겨운 관계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조차 주변의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언제 깨질지 불안하게 흘러가는 것이 요즈음의 실태이다. 믿음, 신뢰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판국이다.

이젠 자본주의에 젖어 이해 타산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모종의 거래에 의해 내림굿을 하고 손익계산부터 따지는 풍토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다가 무당들이 드러내고 상업화되어 가는데 무당을 찾아 상담을 의뢰하는 사람들의 흐름도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밝은 미래를 꿈꾸어야하는 젊은이들이 사주 카페에서 사주를 보아주는 모습도 흔하디 흔하다. 사주 카페가 생기고 젊은이들은 공부하던 책을 접고 주역 또는 명리를 품에 안고 그것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주역이나 명리는 학문으로 나는 알고 있다 .   대단한 철학을 지닌 학문이 상술로 변한 것이다 . 카페주인은 그런 젊은이들을 활용해서 ‘꿩 먹고 알 먹기’ 식으로 카페를 운영한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드러내놓고 관상쟁이, 사주쟁이로 변해 있는 것이다. 온종일 카페의 어두운 조명아래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광경을 보면 어쩌면 사주풀이라는 것이 사회의 필요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래된 사주쟁이들도 카페주인과 합의 하에 나누어 먹기 식으로  장사에 참여한다고 들었다. 그런 현상이  젊은이들과 심지어 대학생들에게까지 사주팔자에  막연한 의존심을 갖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 된다 . 아무리 심심풀이로 사주풀이를 하여  당사자의 미래에 호기심을 충족한다고 하지만, 어떤 사항이 나오면   그것은 어느새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한창의 젊은이들에게 사고까지 바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언젠가 젊은이의 직업 선호도 가운데 무당이나 점쟁이가 꽤 높은 수치로 나왔다는 보도를 봤다.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위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경제위기 일수록 무당들만 돈 벌기 좋을 때라는 데, 돈 많이 버시죠?” 

나는 웃고 만다. 세상에서는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사회나 경제가 불안해진다든가 입시 때처럼 대목이면 떼돈을 버는 것처럼 알고 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무당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 때가 장사의 호황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당과 보살님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장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황해도 원로 만신의 별호를 들어보면 재미있는 사연이 많다. 연탄만신, 새우젓만신, 낚지만신, 고춧가루만신... 예를 들면 낚지를 잡다가 말문이 트여 만신이 됐다거나 새우젓을 팔러 다니다가 말문이 트여 만신이 된 경우들이다. 동네에서 말문이 트여 신을 받게 되자 신어머니나 신 동기간에 그렇게 부른 것이 고스란히 별호가 된 경우다.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접신이 되어 만신으로 살아나가는 순수함 속에 내림굿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무당이 되고 나면 시간은 그대로 정지한다. 원로 만신들을 뵐 때마다 신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에게 내리는 것임을 확신하곤 한다. 그분들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맥을 이어오셨다. 무당의 삶은 이런 것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살아오셨다. 굿판에다 모든 한을 풀어내며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는 것과 무관하게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그저 굿과 더불어 삶을 살아오신 것이다.

  옛말에 ‘숟가락 몽둥이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무당이 내린다’고 했다. 그러다가 다행히 신령님이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굿이 많아져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많은 돈을 만지게 되면 돈 앞에 무너져 내린다.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맑은 정신마저 혼탁해져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당으로서 면모를 갖추는 수행과 자기 연마보다는 일신상의 편안함을 추구하게 된다. 이미 세속적인 맛을 아는 판에 돈까지 넉넉하다면 무당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린다.

  이 모든 이야기는 누구를 비판하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하늘에 침 뱉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무당의 본질을 깨달아가면서 고해 성사하는 마음으로 꺼낸 이야기다.

무당은 성직자와도 동일선상에서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대규모 행사를 치를 때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어김없이 초대돼 행사를 빛낸다. 그러나 그 자리에 단 한번도 무당이 초청되는 경우는 없다. 무당을 초청하면 어떤 반응이 벌어질까... 무당을 초정하면 미개인 취급을 당하거나 종교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 취급을 받을까 우려되어서인지 알 수가 없다. 깊이 생각하기 이전에 솔직히 말해 무당으로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아직  여타의 종교계의 지도자 분들과 동등한 예우를 받기에는 문제점이 너무 많은 것이다. 엄연히 같은 사제의 일을 하는 것은 분명한데 동등한 예우를 받지 못하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문물이 밀려오면서 전통 문화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고 무당의 역할마저 저급한 미신으로 취급당한 역사적인 이유가 첫 번째일 것이다.   이후부터  무속으로 부르면서 천시해오는 관행도 문제일 것이다. 교황청처럼  중앙통제 라는 제도가 없는 것도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무당들이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린 것도 큰이유중에 하나이리라 . 그것은 무당들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아무런 제도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 일수도 있다.

어느 누구라도 어느 날  신이 내렸다고 하면 내린 것 이니까.

조그맣게는 그러한 인식들과 또 다른 인식들이 합쳐져서 크고 작은 행사에서도 무당이 타종교의 사람들처럼 초청을 받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막연하게나마  언젠가는 훌륭한 무당이 등장하여 다른 종교계의 어른들과 같은 예우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 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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