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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공연과 록뮤직

담박제 2004. 4. 19. 23:22

굿과 록 뮤직


  차츰 굿에 매력을 느끼면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즐기는 록 뮤직(Rock Music)이 내가 굿을 행하는 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록 뮤직의 노랫말은 굿하고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특성은 아주 흡사하다. 록 뮤직은 마약, 섹스, 폭력 등이 주된 테마로 삼는 편이다. 록음악을 들을 때면 나는 인생의 처절한 한풀이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다. 외로움에 좌절을 하고 고통 속에 방황을 할 때에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록 뮤직과 담배였다. 독립적인 삶을 고집하는 나로선 술에 의지하거나 이성에게 의지하는 식의 향락적이거나 안일한 도피 방법은 체질적으로도 거부되는 대상일 뿐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존심에 흠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홀로 자립할 수 있게 했던 록음악은 나를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통도 달래주던 소중한 친구였다. 한스러움이 극도의 상태로 치달아 내 스스로 통제 불능상태가 되면 록 뮤직 속에서 그 폭발에 가까운 한풀이를 해오곤 했다.  

  생각해보면 1960년대, 1970년대의 록 뮤직을 하던 음악인들은 다 무당, 그 자체이다. 한 예로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의 <부우두 차일드(Voodoo Child)>란 곡은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이다. 그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기타 플래이는 나를 고통에서 끄집어내 몽롱하고 신비한 다른 정신세계로 몰입시키는 듯 했다. 마치 마술처럼.... 또한 블랙 사베스(Black Sabbath)의 <해븐엔 헬(Heaven & hell)>은 나를 저승과 이승을 오락가락하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스테어 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을 들으면 난 잠시 세상살이의 시름에서 벗어나서 천상의 세계에 사는 영원한 자유인이 되어 상상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디퍼플(Deep Purple)의 <챠일드 인 타임(Child in Time)>은 또 어떤가. 그 음악을 들으며 자살의 유혹을 털어내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사람의 심정과 정서를 치유하는 존재가 무당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들 역시 무당과 한 맥락인 것이다. 당시 록 뮤지션들은 강렬한 사운드의 직감적인 음악으로 신을 청배하며 신에게 가까이 다가섰던 존재임에 틀림없다. 내게 록 뮤직은 어느 장르의 음악보다 정제되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한 즉흥적 영감으로 내 감성을 충동적으로 자극하고 무한한 희망과 영원한 자유를 불러일으키는 마력적인 존재이다. 나는 무당으로서 하늘에 다가가는 춤과 소리로 신을 청배한다. 그리고는 산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죽은 이의 한을 풀어주며, 감성의 자유로움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러니 그들과 나는 일맥상통한다고 믿는다.

  어느날 래드 제플린의 존 보넴(John Bonham)의 드럼연주를 경청하면서 내가 훨훨 날아가는 느낌 갖는  동시에 가슴 저 밑의 심연에 알 수 없는 기운이 분출되는 것을 절감한 적도 있다. 그것은  무당이 되기 전 송광사에서 새벽예불의 법고소리와 목어소리를 들을 때의 느낌과 똑같은 것이었다. 록 뮤직의 터치는 언제나 나의 온몸을 휘감으며 자극하는 느낌이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내 몸에 신을 휘감을 수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터득케 해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록 뮤직과 굿은 이웃사촌처럼 긴밀한 관계라고 본다. 그 때문에 나는 굿에 록 뮤직 과 같은 특성이 도입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엉뚱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굿은 이제 언더그라운드에 머물지 않고 한국인 특유에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도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제화된 전통이 아니라 현대속에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굿의 진행방법도 전통을 이어가되 젊은 세대도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상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한데로 묶은 가장 강력한 미디어인 동시에  예술장르가 분명 록 뮤직이었다.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음악의 교류에 국경이 없이 다양화가 이루어진 결과물로 분명한 사실은,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비틀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 에서 검증됐듯이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고  공감하며  하나의 띠를 이루게 한 것이 록뮤직임엔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이 같은 록 뮤직의 특성을 이 땅의 굿에 적절히 도입한다면 전통을 고수하되 굿의 현대화가 도모될 수 있으며, 마침내 젊은이들도 사랑하는 굿, 아끼는 굿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는 것이다.

  록 뮤직 콘서트를 쉽게 접할 수 없던 나는 뮤직 비디오를 어렵게 구해서 보는 편이었다. 비디오 속의 콘서트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언젠가는 록 뮤직 콘서트의 현장을 오감으로 체험하리라는 꿈을 꾸기도 했다. 몇 해 전부터 국내에도 록 뮤직 콘서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로 록 뮤직 콘서트는 만사를 제치고 따라 다니며 그 분위기 속에 흠뻑 젖어 들곤 한다. 록 뮤직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수천, 수만의 젊은이가 록 뮤직의 광기와 신기에 열광하는 것을 즐기는 일은 남다르다. 그러면서 내 굿판을 그 콘서트에 대치시켜보는 것이 요즘 나의 즐거움이다.

  내가 기타리스트라면 어떻게 관중을 함락시킬 수 있을까...만약 저 무대 위에 있는 기타 리스트가 굿판에 선다면 그 광기는 어떠한 모습으로 표출돼 굿판을 이끌어 갈 것인가 ...보컬이 되어 보기도 하고 베이시스트가 되어 보기도 한다. 또 드러머가 되어 보기도 한다. 어찌 허황된 상상에 그칠 것인가. 이러한 나의 탐색과 노력은 반드시 내 굿에 힘과 개성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는다. 무당인 내가 광기 어린 예술인의 삶을 살면서 세상을 떠난 넋을 달래주는 굿을 주관하게 될 때, 그 섬짓하고도 강렬한 광기를 휘감을 수 있어야만 한풀이가 될수 있지 않는가.

  무당은 분명 광대도 연주인도 아니다. 그러나 록 뮤지션 그 이상의 신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 신명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현대적 언어가 다소 미흡하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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