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하늘에 다 대고 침뱉기.

담박제 2004. 12. 6. 03:16
 

나는 또 나와 같은 족속들에게  비난 받을 짓 인줄 알면서도

  한밤중 수덕사로 향했다.


아직 똥오줌을 못 가리는 무당새끼를 데리고 말이다.

  다비식!

언제부터인가  나는 꼭  가서 느껴봐야한다고  생각하며 기다렸던것이다.

(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기를 기다렸다는 게 되나?)

누군가가 내게 말한다.

“ 거참 이상한 무당이네, 못 말리는 날라리 만신이야”

  큭큭대며 놀려 대면서 말이다.

‘아무렴 어때  내 마음이지’

우리 어르신은 이 사실을 알면 또  한마디 하실게다 .

분명 “아니 너는 상문이라도 끼면 어쩌려고 그렇게 철이 없느냐” 며 가벼운 역정을

내시며  행여라도 어떤 행사가 있다면 행사에  참여도  하지 말라고  하실게다.


조문을 한다는 것 !  우리네 무당들이  예로부터  부정하다고 꺼려 온 것이니깐.

무당에 처음 입문하면서 상가 집에 못 가게 하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불만 중에 하나였다.

설사 부모가 돌아가신다 해도   임종은 보지 말고 돌아가셨다 해도  될 수 있으면 

상주노릇을 피하라는 말.

친척이 돌아가셨을 때는 더더군다나 조의금만 보내고  가지 말라는 그 넘의 전통인지 몹쓸 것 인지에 대해 “그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느냐” 면서 펄펄 뛰며 불만이 많았던  나는 새끼무당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개의치 않고 주변에 초상 이 나면 먼저 앞장서서 달려가곤 한다.


헌데  기가 막힌 것은 그런 나를 죽은 사람의 길닦이인 진오기 굿을 시킬려고 오는 줄 알고

노골적인행동으로  빨리 가주기를 바라는  집도  있었고  개신교를 믿는 집은  귀신이 온 것 같은  취급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경우에 처 할 때 마다,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고  섭섭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내가  내 부모에게 배운 바로는 좋은 일 보다는 굿은 일에 더 이웃을   돌아 봐야 한다고 배웠으니 배운 대로  행동했을 뿐 이다.

암튼 그렇게 무당들이 조문을 기피하다보니 정작  본인들이 죽고 나면  문상객을 바라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살아서도 외롭게 살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외롭게 죽어 갈 수박에 없는 현실 인 것이다. 대부분의  무당들은 부모가 돌아가셔도 주변에 같은 족속들 에게 알리지를 않는다. 모두들 꺼려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무당들도 분명 다른 종교처럼  내세관이 있건만  언제부터인지 내세관이 없는 것처럼  인식이 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이  그냥 종교가 아닌 미신이라고 치부되기도 하는 요인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세관이 없다면  진오기 굿 즉 씻김굿등도  행해질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삶과 죽음  산자와 죽은 자 의 매개체 인 무당으로서  이 부분이 내게는 화두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어느 여행길에서나 묘지를 찾아보고는 한다.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며칠을 시체 타는 연기 와 냄새에  흠뻑 젖어보기도 하고. 몇몇 커다란 성당 지하의 무덤을 둘러보기도  한다.

무당이니깐!   무당은 귀신하고 노는 사람이니깐.

  또한  미사와 예불을  느껴 보려고  기회가  주어지면, 나는 살며시  스며들듯

성당과 절을 찾기도 한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무당인 것은 모를 테니깐.

또  알아도 그만 이다. 설마  쫒아내지는 않을 테니깐.

그렇게  살아가면서 나는  가끔 신음  한다.

내가 섬기는 신명에 대해 , 무당들이 모시고 있는 신명에게  너무도 부끄러운 현실을

우리네  무당들이 자각 하지 못하고 있다 는 것에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도 별 수 없는 족속에 한 사람 아닌가?

이런 말이 하늘에 침 뱉기 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


오늘 다비식에서  나는 또 한탄을 하고 말았다 .

  “무당은 사제로서   스님과 신부님들과 똑같은 격에 놓여져야 한다.” 고

기회만 주어지면 떠들어대는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노력을 했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  무당의 격을 높이는 데 한 획을 그으셨고   아마도 다시는 저런 무당은 없을 거라고 칭송을 받기도 하시는  우리 신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저런 장례식이 치러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나를 못 견디게 만들고는 한다.

빌어먹을  내가 처해 있는 현실 인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끄덕 안하고  내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자위를 하고는 하지만, 언제나  나는 무당판 에서는 이단 인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나를 쇼크 먹게 한 대목이 있었다.


러시아 샤먼(무당)이 어느 학자와 인터뷰에서


질문 : 현대문명의 영향 아래 에 있는  한국에서는 샤머니즘이 쇠락하는 분위기이다 속으로는 믿어도 겉으로는 불신하는 추세인 게 사실이다  직업 자체를 천시하는 경향이 있기 까지하다.  몽골은 어떠한가?

답변: 한국과 러시아의 차이는 뭔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러시아의 샤먼의경우는  이를 생계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직업이 있다. 현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 샤먼도  목축을 한다던지  생계수단이 따로 있었다.  샤먼들이 그들 의 부인들에게  핀잔도  많이 들었다.

풀먹이러가야 하는 데 산에 기도나 다닌다고(웃음)  나 역시 직업이 따로 있다.

지방 신문에 글도 쓰고 책도 쓰고 민속박물관 일도 보고 있고  다른 이들처럼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샤먼이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샤먼들이 주위사람들

에게서 많은 존경을 받을 수박에 없다.

      -바이칼 한민족의시원을 찾아서-



굿으로 생계유지를 하는  내가 부끄러워졋다.

그래 바로 이건데  알고는 있지만 ,  시도를 해 보기도 했지만,

항상 두가지일을 동시에 하려 하는 나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비난한다.

돈에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무당이 다른 일을 하면 큰일 난다고.

다른 일을 하면 신빨이 죽어서 안 된다고. 

염병 누구를 도와주고 싶어도  말로는 얼마든 지 할 수 있지만  돈으로 해결해야 되는 사람들은 어케하나?  귀신 병에 들려 있어  굿을 하면 나을 수 있어도 돈이 없어서 굿을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케하나?


희노애락을 주변사람과 나누게 하는 것이 무당의 역할인데.  우선 내 밑에 신아들인지 신딸에게   나부터 모범을 보여야 할 텐데.

이거 가난한  날라리 무당이 힘 쓸래도 힘이 없네.

말로는 뭐는 못해 !

돈버는  방법 누가 날 좀 갈켜 주면 안되남요?   

   

 

다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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