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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신년맞이 재수굿이 열렸네 !( 한계레 남은주 기자)

담박제 2012. 2. 4. 15:21

» 서해안 풍어제와 대동굿 전수자인 만신 이해경은 길거리에 굿판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지난 1월7일 서울 대학로 꼭두박물관에서 이해경씨가 신년맞이 재수굿을 하고 있다. 꼭두박물관 제공
지난 1월7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가 들썩하도록 재수굿 장단이 울려퍼졌다. 2층 꼭두박물관에서 장구·징·피리 소리에 맞춰 신년맞이 굿이 한창인 까닭이었다. 굿을 벌인 사람은 황해도 만신 이해경(56)씨고 굿을 청한 사람은 꼭두박물관 김옥랑 관장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관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이름을 알 만한 배우들까지 빼곡히 둘러선 덕에 굿판은 떠들썩하고 성대했다. 황해도 굿이라면 오시는 장군님도 대감님도 많으시렷다. 만신이 붉은 저고리, 푸른 두루마기에 치마를 몇 겹 둘러도 굿장단은 쉼이 없다. 장구를 두드리는 악사와 만신이 주고받는 사설과 재담도 몇 고개를 넘는다. “이제야 살겠나 허리 좀 펴려고 했더니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치받고 앞일이 깜깜하네” 하는 무당의 소리에 듣는 사람들 고개가 쳐지고, “올해도 나라는 여전히 시끄럽겠지만 우리 같은 민초들은 노력한 만큼 받는 것도 있고 형편이 한결 피겠네” 하는 소리에 눈이 밝아진다. 굿이 끝나자 둘러앉았던 사람들은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오색실을 나눠가졌다. ‘소망의 꽃’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굿 퍼포먼스는 만신 이해경씨가 1월29일까지 꼭두박물관에서 개최한 ‘지화’전에 직접 만든 종이꽃을 출품한 인연으로 열렸다. 이해경씨가 종이로 만든 꽃 ‘수팔연’은 사진작가 구본창씨가 찍어 이번 전시회 포스터에도 실렸다.

무당 앙코르!

1991년 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된 이해경씨는 옛것을 접하면 신명이 돋는다는 점에서 다른 무당과 좀 다른 사람이다. “옛날의 주술적인 행위를 동경하고 사모하고, 옛 주술 흔적이 묻힌 자리만 알면 달려가 내 손으로 파보고 싶어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내가 무당이 됐을 때는 이미 굿판엔 농악할 때 머리에 꽂는 막꽃밖에 없었어요. 무당이 되고 나서 동해안 별신굿을 보러 갔는데 흑예등을 어선에 죽 달아놓은 것이 그리 화려하고 예쁠 수 없단 말이죠. 돌아가신 신승남 선생님께 만드는 방법을 묻고 그랬는데 진짜 큰 황해도 굿판을 보고 나서는 꽃에 환장을 하게 됐어요. 신어머니로 모시는 김금화 만신께서 1994년 포천 기장사에서 닷새 동안 열리는 만수대탁굿을 치셨는데 황해도 굿전에도 꽃이 만발하더라고요.” ‘내가 저걸 만들어야겠다’ 마음먹고는 굿하러 가서도 종이꽃 만드는 법을 몰래 익혔다. “예전엔 지화를 만드는 걸 꽃을 피운다고 했어요. 굿날이 잡히면 ‘얘 일났다. 꽃피워야지’ 하면서 무당들이 모여앉아 꽃을 피웠단 말이죠. 이젠 꽃을 피우지도 않고 굿에 꽃을 쓰지도 않아요. 몇몇 환쟁이들이 꽃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지만 절대 안 가르쳐줘요. 그래서 굿판마다 사진을 찍었다가 나중에 그걸 보고 똑같이 만들어봐요. 인간문화재였던 안승삼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꽃갓에서 꽃을 떼어 풀어보며 만드는 법을 익히기도 했죠.” 이씨는 꽃 피우는 일로 굿이 시작된다고 했다. “무당들이 꽃을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어요. 굿하는 사람의 소원을, 그 간절한 소망을 꽃잎에 담는 거야. 굿에 피우는 꽃은 그들의 소원이 하늘로 전해지라는 의미예요. 몇 날 며칠 만들어 굿이 끝나면 싹 거둬 태워버리지.”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해서 종이꽃을 접기 시작했다는 그는, 꽃들을 모아 5년 전엔 ‘무속지화’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무당이 가장 신명을 낼 때는 굿하는 자리인 법. 2000년 서울 홍익대 앞 주차장 골목에서 굿 공연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국악인 황병기,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테크노댄스팀 등 수없이 많은 사람과 무대에서 굿을 했다. “무당 앙코르!”라는 환호성은 어느 복채보다 중독성이 강했다.

겁주지 말고 용기를 주길

무당인 그가 하는 굿 공연은 뭐가 다를까. 무당 이해경은 어느 무대에 서든 굿할 때처럼 신령님을 좇아서 한다고 했다. “무복도 몸짓도 다 정하고 시작하지만 소용이 없어요. 굿할 때 무당은 자기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서 어느 신령이 찾아드실지 미리 알 길이 없어요. 아무리 오래 무당질을 했어도 굿판의 기운이 불안하면 어그러지고 망치는 게 굿이에요.” 마찬가지로 굿에서 던지는 말들도 형식은 있으나 내용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했다. 영검 자랑 드높던 그지만 좀처럼 굿을 벌이는 사람을 겁주고 위협하는 법이 없다. “점 보러 가서 너 어깨에 누가 앉아 있구나, 할아버지가 따라 들어왔구나 그러면 사람들이 기겁을 하는데, 그건 무당이 자신의 말을 인정하게 하려는 강력한 수단으로 하는 말이지 사실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무당은 저승과 이승을 잇는 사람인데 맨날 저승의 것이 보이면 어떻게 살겠어. 꼭 본 듯이 느끼는 거겠죠.”




보통 때는 여느 무당처럼 길흉을 점치는 무꾸리를 하고 액을 쫓는 부적도 쓰지만 저 세상의 기운에 사로잡힌 사람이 찾아들기 전에는 굿하기를 권하지 않는단다. 무당 이해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도 굿도 아닌 상담이 필요할 뿐”이라고 했다. “요즘 굿이 대세라는데 사람들 마음이 만들어낸 유행 같아요. 예전엔 사람들이 일이 안 풀려 상담하러 오면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됐느냐고 묻지요. 근데 요즘은 앉자마자 내가 악귀에 씌지 않고는 이럴 수 없다고 남의 탓을 해요.” 우울증과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음을 체감한다. 호객행위가 날로 발달하는 것도 시절이 수상한 탓이다. “국운을 얘기하길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올해 김정일이 죽는다고 하면 반반이잖아. 그게 맞으면 확 뜨고 안 맞으면 묻히는 거고. 얼마나 남는 장사야. 나는 아직까지 큰무당이 안 돼서 국운을 읽을 줄은 모르고, 내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좋은 기운이 있나만 봐요. 무당은 삶의 조언자 역할을 할 때 가장 빛나는 게 아니겠나.”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