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보는 세상 이야기

死者의 편지

담박제 2011. 3. 1. 23:06

 

                      死者의 편지
                                             한 말 숙
    
   내가 7순이 되던 해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63세에, 어머니는 67세에 돌아 가셨으니까 나는 두 분보다 이미 몇 년을 더 살았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조바심이 쳐지면서 줄곧 정리해야지, 빨리 정리해 버려야지 하고 갈 길이 바쁜 사람처럼 벼루면서 어언 10년이 날아 가버렸다.

내 동기동창생 중에는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숫하게 늘어놓은 외상 술 값이었다 한다. 그 친구는 수술 받기 전에 그 외상 값을 갚느라고 통장을 다 털었는데 막상 폐를 열어 보니까 오진이었다고. 그는 돈만 다 없애버렸다고 하며 껄껄 웃고 있었다.

내가 정리 한다는 것은 약간의 낭만이 있는 외상 술값이 아니고, 가진 것을 버린다는 육체 노동이 수반 하는 작업이다. 모두 혹은 숨 끊어지는 순간까지 필수적인 것 외에는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인데, 이것도 있어야하고 저것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하며 결국 버리지 못하고 거의 다 그대로 그 자리에 두고 있다. 카펫과 그림과 침구며 찬 그릇을 한 트럭 지방의 어느 시설에 기부한 적이 있고, 때때로 옷가지를 가까운 사람들한테 준 것이 고작이다.

   정리한다는 것,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몇 십년 묵고 있는 뒷 광의 것, 부엌 살림, 옷가지, 침구, 책, 장식품등 계획적으로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해나가야 하고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하는데, 당장 살아 있는 지금 해야 할 일 조차도 제 때에 못해서 쩔쩔매고 있으니까, 게으른 자의 자가 변명이겠지만
“죽음이 먼저냐? 삶이 먼저냐?” 하고 혼자서 따져 볼 때도 있다. 언젠가 큰 딸한테 죽기 전에 다 버려야하는데 그 일도 여간 부지런해야 되나보다고 했더니, 정리를 다하고 나면 어미가 죽게 될까보아 엄마 치우지 마세요하고 비명을 질러서, 엄마 안 죽는다 걱정마라고 했었다.

  그렁저렁 그동안 버린 것도 적지 않으나 새로 구입한 옷가지며 그림, 그릇, 자그마한 장식품등이 또 늘었다. 아직 내가 살고 싶은 의욕이 있다는 증거 인 것 같아 물론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했다하지만, 그 사람만치 위대한 인간이 아니더라도 비록 내일 죽을지 모르나 어떻든 오늘은 살고 있으니까 살아야하지 않나하고 셍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아닐까.

며칠 전, 오래 된 농 하나를 정해 놓고 그 안의 것이야 말로 다 버리기로 작심을 하고 무조건 속에 있는 것을 일단 거실에 다 펼쳐 놓았는데, 그 속에서 뜻밖에도 착잡한 느낌을 주는 것이 나왔다. 이것을 어떻게 하나....? 한동안 주마등같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를 쳤다. 실크를 겹으로 해서 쪽보를 모은 일종의 태피스트리가 두 개 나온 것이다. 세로 2미터 20 센티, 가로 1미터 60센티. 그 옛날 받아 보았을 때와 색상이 그대로다. 색의 배합과 크고 작은 천의 배합도 상당한 미술품이다. 그 태피스트리와 함께 받았던 편지도 그대로 들어 있는데, 갱지에 연필로 쓴 글씨는 흐려져서 확대경을 대고 겨우 읽을 수 있었다.

편지는 나에게 보내 온 것이었다. 내용은 “저는 1945년생의 무명작가입니다. 6년 전부터 쓰러져서 사경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요즈음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온의 바다에 누워 있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쌓여 있는 작품들이 답답해서 친구들에게 노나 주고 있습니다. 문득 언젠가 황병기 선생의 연주 모습을 어느 잡지에서 뵈온 기억이 나서 연주하실 때 배경으로 쓰시면 싶었으나, 부담이 되실까 망설이다가 오늘 기분 좋은 날 결심하고 보내드립니다. 작품은 10년 전에 전시한 것으로 제목은 ‘페스티발’입니다” 실크라 한 방울의 물도 떨어지면 번지기 때문에 조심하십시오. 천정이 높은 공간에서 사용하십시오.

글씨도 달필이고 문장도 정확하고 실크는 영어로 써 있다. 취급 방법이며 사용 방법도 자세히 일러 주고 있다. 문장 전체에서 상당한 수준의 교육과 교양이 있는 사람임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편지는 더 이어졌다. 자기는 TV며 방송을 듣지 않기 때문에 황병기가 연주하는 것을 본적은 없으나 음악은 열광적으로 좋아해서 ‘비단길’을  사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많이 선사했다고.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있어서 뉴욕에서 몇 번 초대 전시회를 가진 적도 있다고 했다. 편지는 1993. 10. 15. 안 순희 드림 으로 끝나 있다.

당시 우리 내외는 그 태피스트리가 연주 배경으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나는 그 편지를 반듯하게 갠 그 태피스트리에 넣어서 장롱 속에 함께 넣었다. 물론 바로 감사하다고 남편에게 답장을 쓰게 하고 그의 CD 하나에 사인을 해서 우송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내 준 미술품과 정성어린 편지의 에피소드는 그것으로 완전히 끝나고,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후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어느 날 경상도 어느 시골의 파출소라고하며 전화가 왔는데 ‘안 순희’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경찰인 듯한 사람이 물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이름이라 모른다고 대답했더니, 그 사람이 길에서 횡사 했는데 달랑 하나 들고 있는 가방 속에 황선생의 편지와 CD가 들어 있어서 황선생 전화를 백방으로 추적해서 알아내어서 전화를 하는 거라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 태피스트리 건이 생각나서 있는 대로 그대로 말하고, 우리 내외는 만난 적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경찰은 “무연고 시체네“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안순희,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분명히 육체가 있는데 왜 무연고일까? 1945년생이라고만 하고, 어디서 미술을 배웠다는 말도 없다. 북한에서 단신 남하한 사람일까? 아니면 고아였을까? 아니면 나혜석처럼 가정도 버리고 미술에 인생을 건 사람일까? 그녀가 해방둥이라니까 나에게 그 편지를 보냈을 때는 나이가 48세, 한창 젊은 때인데, 그때 이미 6년 전부터 쓰러졌다하니, 40대 초반에 이미 신체에 장애가 생긴 사람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작품을 나누어주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분명 친구들은 있었을 텐데 죽을 때 달랑 하나 가지고 있었다는 그 손가방 안에 일가친척이며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도 쪽지도 없었단 말인가? 아무 것도 없는 가방 속에 왜 하필 내 남편의 CD와 고맙다는 인사장만, 그것도 10년이나 넘게 간직하고 있었을까? 나누어 주는 것을 받기만 하고 어느 누구 한사람 고맙다는 인사도 답례도 하지 않았는데 오로지 황병기만이 답례를 한 것이 고마웠을까? 아니면 오랜 투병 끝에 언제 어디서 쓰러진채 세상을 뜰 줄 몰라서 그나마 유명 인사에게 연락이 닿아서 무명화가 안순희가 이승에는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까?
나는 그녀의 처절한 고독감이 가슴에 전해 오는 것 같아서 길게 한숨이 나왔다.

  모지리아니, 반 고호....그래도 그들의 예술은 끝없이 빛나고 있다. 안순희 씨처럼 무명인으로 살다가 무명인으로  노변에서 세상을 뜬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인생 한번 왔다 가는데 그 짧은 순간이 사람의 수만 치나 가지각색이다.

나는 거의 20년 전에 갱지에 연필로 단정히 쓴 글씨가 세월이 지나면 더 흐려져서 읽을 수 없을까보아 워드로 쳐두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편지함에 넣어 두도록 했다. 그 편지함에는 우리가 오래 간직하고 싶은 국내외에서 온 편지들이 들어 있다. 유명 인사의 것 도 꽤 된다.  

  그리고 그 실크 태피스트리 두개는 영혼의 존재를 절대로 믿고 있는 친구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 태피스트리를 벽에 걸고 鎭魂의 祭라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페스티발(祝祭)’이 ‘진혼의 제’가 되는 것이다. 작가가 생전에 이 일을 상상이라도 해 보았을까?

  또 한 가지, 절대로 버리거나 팔지 말고 그와 비슷한 전시회가 있으면 전시해 달라고 다짐했다.

안순희 화백, 편지와 작품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편히 쉬소서.                          

2011.1.20

(계간 '21세기 문학' 2011년 봄호)

                       

그친구는 바로 이친구입니다 ..

 

 

 

이렇게 안순희화백의 영혼은 네게로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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