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판이야기

카이스트에서 !

담박제 2007. 6. 12. 00:27
과학의 본산 카이스트에서 굿판 열었다?
카이스트 봄 문화행사 일환으로 이해경 무당 초청
텍스트만보기   김기(mylove991) 기자   
▲ 작두거리에 드는 만신은 입에 '하미'라는 종이를 문다. 하미를 입에 문, 하얀 고깔에 너른 장삼의 이해경 만신의 모습은 승무를 보는 듯하다
ⓒ 김기
대덕과학단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지난 8일 저녁 주말을 맞은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총장 서남표) 노천극장에 '잰지잰지재잰' 징과 장구가 하늘을 찢을 듯이 울려댔고, 그 중심에는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에서>로 대중에게 익숙한 이해경 만신이 서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건 존재했던 굿당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사람 없는 곳으로 맥없이 밀려나갔다가 우리 것에 대한 중요성이 사회인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요즘은 다양한 곳에서 굿을 만나게 된다. 이제 카이스트에서도 버젓한 굿 구경을 하게 됐으니 세월의 변화가 반복의 궤를 갖는다는 인생유전이란 말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카이스트 역시 대학인지라 여느 학교와 아주 다를 수는 없다. 이 날 굿은 카이스트 문화예술대학원이 주최하는 '카이스트 봄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보통 봄·가을 두 차례 시즌별로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봄엔 지난 3월부터 시작해서 총 7개의 공연이 학생들과 시민들을 위해 마련됐다.

▲ 8일 대덕단지 내 카이스트 노천극장에서 굿이 열렸다. 굿의 주인공은 지난해 다큐영화 <사이에서>를 통해 대중에 널리 알려진 황해도 무당 이해경. 공연 전 그를 찾아와 사인을 청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 김기
그러나 올해 카이스트 봄 문화행사는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7개의 공연 중 6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서양클래식이 주종을 이뤘다. 다만 마지막인 8일 '황해도굿의 대무 이해경과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의 대동마당, 신명 2007'이 예정되었다. 국악만 했어도 조금 튀는 배정인데 거기에 굿이 중심이 되었으니 카이스트 문화행사를 찾아오던 사람들에게 이례적인 기대감을 주었다.

카이스트 문화행사를 맡은 김정진 교수는 "학생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시작되었다가 차츰 주민들까지로 그 대상을 넓히게 됐다"며 "국악을 클래식만큼 편성하지 못했지만 기왕 전통공연을 할 바에는 정말 핵심적인 것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해경 만신은 그 핵심을 보여주는데 적격이라고 생각한다"고 국악과 더불어 굿 공연을 초청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날 공연은 저녁 7시 30분경 여성들로만 구성된 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이 먼저 무대를 열었다. 작곡가 유은선이 18년을 이끌고 있는 '다스름'은 국악계 안팎으로 왕성한 활동과 명성을 쌓아온 단체로 지난해 콜롬비아 등 남미순회공연도 다녀온 바도 있는 유수의 악단이다. 하얀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다스름은 크로스오버 국악과 더불어 국악퀴즈 등으로 청중들의 흥을 먼저 돋웠다. 그 탓인지 대부분 실제로 굿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무대를 대할 수 있는 듯했다.

▲ 봄가을 여러번의 문화공연이 열려도 굿은 처음인 카이스트. 그 완충이라고 할까 여성국악실내악단의 연주가 먼저 있었다.
ⓒ 김기
공연으로 준비한 굿이고, 게다가 최초로 굿의 형태가 서는 카이스트라 이해경 만신은 칠성거리, 감흥거리, 작두거리 세 과장만 준비했다. 최소 열두거리는 해야 굿 한 판이 되지만 공연이라는 틀거리 속에서는 어쩔 도리 없는 일이다. 게다가 굿이라는 것이 워낙 일상적이지 않고, 게다가 이해경 만신처럼 강신무의 경우 세습무와 달리 접신의 장면도 있기 마련이기에 프로그램(?) 짜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보여주자니 너무 셀 것 같고, 약하게 하자니 명색 강신무의 굿이 밋밋해질 수도 있어 그 중간쯤의 지점에 서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분명 아닌 것이다. 해서 이해경 만신이 준비한 세 거리의 굿은 특히 대동굿에서 참여한 사람들을 숨 가쁘게 달뜨게 만드는 거리였다. 그렇지만 문화공연으로써의 굿이라지만 굿은 굿이다. 게다가 작두거리가 그 안에 들어있는 한 그 굿은 단순한 공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날 굿을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텔레비전에서나 봤을 굿을 직접 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인 표정들이었다. 아니 그런 표정들을 가지고 늦은 시각에도 굿을 끝까지 지켜보는 학생들과 교수 그리고 동네주민들이 오히려 신통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무속하고 어찌 보면 가장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과학도와 과학자들이 대부분 아닌가. 굿을 기다리면서 혹시 그들이 중간에 가버리지나 않을까 저어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빗방울도 떨어졌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어린 고등학생들 말고는 없었다.

▲ 작두를 타기 전 만신은 구경온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운세를 오방기 뽑기를 통해 봐준다. 이 날은 딱 한 사람만 그 행운을 안았는데, 모두 빨간기가 나와 대단히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기뽑기에서 붉은기를 가장 좋은 것으로 본다.
ⓒ 김기
특히 작두거리에서 이해경 만신이 쌀을 뿌릴 때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인 진정 굿을 처음 대하는 사람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여느 대동굿판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 빚어졌다. 그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굿상에 올렸던 술과 음식들을 나누는 때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신명은 카이스트 노천극장 전반에 넘쳐났다.

학부를 거쳐 카이스트 석사 과정에 있는 장주영(문화예술대학원)씨는 "도시서 자랐고, 학교가 과학기술 중심이라서 TV 등에서 본 굿에 대해서 관심은 많았어도 실제로 접할 기회는 없었다"AU "기대를 많이 갖고 공연장을 찾았는데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경 만신에 대해 안tM럽다는 감정도 지울 수가 없었다"며 "생과 사, 사람과 인간 그 사이에서 혼자 짊어져야만 하는 그 무거운 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조금 짧아 아쉽긴 해도 친구들도 모두 즐거워했던 모처럼의 시간이었다"고 굿을 접한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세상일이 늘상 그렇듯이 카이스트에서 최초로 열린 굿 공연이 다 좋지만은 않았다. 공연일 전부터 학교에는 개신교 단체들로부터 불만스러운 메시지를 10건 이상 받았고, 공연 당일에도 개신교 신자들이 앞자리에 모여 앉아 굿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소리를 내서 기도를 했다. 한국 개신교 교회가 무당을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쯤이야 알지만 지성의 상아탑에서 종교가 아닌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마련한 공연에 와서 대놓고 방해를 시도한 것에 주변 청중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들을 지켜본 한 학생은 "오히려 그 분들이 더 주술적으로 보였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양자가 직접적으로 마찰을 빚지는 않았고, 그런 사실을 모르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굿음식을 즐겁게 나눠 먹고, 이해경 만신과 함께 강강술래도 하면서 대동굿의 절정 난장을 만끽하고 밤 10시 30분쯤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 작두에 올라 춤을 춘 후, 작두를 받치고 있는 쌀통에서 쌀을 꺼내 구경꾼들에게 뿌려주는 이해경 만신. 사람들은 이 쌀을 받으려고 주변에 모두 몰려들었다.
ⓒ 김기
▲ 굿을 다 마치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음식나누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했듯이 굿판의 끝은 역시 술과 떡이 곁들여져야 제 격.
ⓒ 김기
▲ 거나할 정도는 아니어도 술 한 잔과 떡 한 입에 흥겨워진 관객들은 이해경 만신과 강강술래를 하며 난장을 벌였다. 대동굿은 이 난장까지 가야 제대로인 것.
ⓒ 김기
2007-06-11 13:2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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